아침독서에 책고래 출판사의 안녕, 존이 소개되었어요. ^^

두 개의 시선에서 하나의 마음으로

작가가 들려주는 그림책 이야기



『안녕, 존』
정림 글·그림 / 34쪽 / 12,000원 / 책고래


현관문 밖에서 웅성웅성 요란한 소리가 나요. 아들 녀석이 또 동네 친구들을 데려온 모양이네요. 서둘러 문을 열어주니 아들 등 뒤로 못 보던 아이가 함께 서 있어요. 피부색이 달라서 자꾸만 그 아이에게 시선이 머물렀지만 외면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 애를 썼죠. 정작 오늘 처음 만난 그 아이를 집까지 데려온 아들은 제게 그 아이를 친구라며 소개해주더군요. 순수하게 그 아이와 친구가 된 아들과 다르게 그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던 제 모습이 많은 생각들을 하게 만들었어요.

그런 제 마음에서 이야기가 시작되었어요. 책 속 주인공을 통해 ‘다문화 가정’이라 칭하는 그들과 우리의 ‘다름’은 무엇인지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안녕, 존』은 방학을 앞두고 외갓집에 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아이의 마음을 담은 그림책이에요. 잘 깎은 연필과 지우개, 그리고 네모 열 칸짜리 공책이 글씨 연습에 한창인 주인공 아이의 필수품이죠. 아직 서툴지만 알림장도 곧잘 받아 적어오고 받아쓰기 시험노트에는 빨간색 색연필로 쓴 100점이라는 숫자가 당당히 적혀 있죠. 이제 제법 글 쓰는데 자신감이 생긴 아이는 보고 싶은 존에게 편지도 씁니다. 존은 저 멀리 베트남에 있는 외갓집에서 키우는 강아지입니다.



이 책의 첫 장면은 삐뚤빼뚤 쓴 아이의 글씨와 존을 그린 낙서들로 시작해요. 크레파스로 쓱쓱 그린 듯한 그림들에서 아이의 천진난만함을 느낄 수 있어요. 아이의 방 벽에는 직접 그린 달력에 날짜를 세며 표시한 흔적이 있고 크고 작은 손그림들이 가득해요. 존과 공놀이할 생각에 가방에 여러 종류의 공들을 가득 담는가 하면 엄마 몰래 존에게 줄 선물을 준비하고 자기 전에 읽어줄 책도 챙겨두지요. 존이 얼마나 컸는지 궁금해하며 작년에 함께 보냈던 시간들을 추억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그림 안에 숨어 있는 이야기들은 많은 것을 담고 있어요.


열 밤만 자면 만날 수 있다는 기쁜 마음으로 존에게 쓴 편지글 뒤로 조금씩 숨은 이야기들이 나타나요. 아이의 외갓집은 베트남이고 아이의 엄마도 아이만큼이나 고향에 갈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는 사실, 할머니와 대화는 통하지 않지만 표정만 봐도 무슨 말을 하는지 다 안다는 아이는 그런 할머니를 잘 지켜드리라며 존에게 당부하는 편지를 보냅니다.

그런 이야기들을 너무 드러내서 말하고 싶지 않았어요. 글에서는 존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나타내고 그림에서는 숨은 이야기를 표현했어요. 그러면서도 그림을 표현할 때 두 가지 기법을 사용한 이유가 있어요. 가장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주인공 아이도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점이었어요.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 그 누군가에게 나의 기쁜 소식을 알리고 싶은 마음, 그리운 사람과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마음은 나와 같다는 거예요. 그런 마음을 아이가 크레파스로 그린 것처럼 표현했다면, 스케치하듯 색연필로 그린 그림은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으로 표현했어요. 두 개의 시선으로 이 책을 읽을 수 있는데 자연스럽게 독자가 느낄 수 있도록 유도한 일종의 장치입니다. 장면 하나하나를 그림으로 가득 채우지 않고 여백을 많이 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랍니다. 일일이 상황이나 이야기를 설명하지 않아도 주인공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고, 독자 스스로의 마음도 읽을 수 있는 여유를 주고 싶었어요.

그래서인지 서평 중에 이런 글이 올라온 것을 종종 보았어요. “이 책만큼은 낙서해도 괜찮다고 말해줄 것 같아요.” 아이의 낙서를 허락하는 책이라고 하니 입가에 미소가 저절로 번지더라고요. 그 말이 저에겐 책의 주인인 아이들을 존중해주고 그 모습 그대로 인정해주겠다는 어른들의 선언같이 들렸거든요.




『안녕, 존』을 쓰고 그리면서 느끼고 배운 점이 참 많아요. 먼저 제 자신과 가족을 돌아보게 되었죠. 올해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한 아들의 마음을 읽는 법을 조금 알게 됐어요. 그림책 속에 들어 있는 주인공의 흔적은 대부분 아들의 글씨나 그림들을 거의 그대로 흉내 내어 그린 거예요. 선 하나하나 그림에 쓰인 색마다 아들의 마음이 담겨 있는 게 보이기 시작했어요.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고 생각한 것들이 마음을 열고 알려고 하니 엄마의 눈과 마음에 느껴지더라고요.

그 후 점점 주변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어요. 아파트 경비아저씨, 청소해주시는 아주머니, 옆집에 사시는 할아버지와도 눈 맞추며 기분 좋게 인사 나누게 되었죠. 이웃들과 인사하며 지내다 보니 겉모습은 우리와 다르지 않아 예전엔 미처 몰랐던 다문화 가정인 이웃도 알게 되었어요. 유럽이나 세계 다른 여러 나라처럼 우리나라도 이제 다양한 문화의 친구들을 어디서나 쉽게 만날 수 있어요. 오가며 안부인사를 나누고 제 아들은 그 아이들과 친구로 지내지요. 그 아이들 덕분에 많은 생각을 했어요. 함께 어울려 나누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해주고, 드러내진 않았지만 색안경을 끼고 있던 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기도 했지요. 그리고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매 순간 느끼고 배우고 있어요. 순수함과 맑음으로 무장한 아이들에게 편견을 심어 주는 건 어른들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이 책을 다 읽고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그리운 누군가 혹은 옛 기억이 떠올라 그때를 추억할 수 있게 해주었으면 해요. 그리고 가슴속에 작은 먹먹함을 남겨 내 주변 사람들과 나를 돌아보는 계기를 주는 책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네요.

정림 선생님은 디자인을 전공하고 어린이책에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작가로 활동하며 창작 그림 수업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그린 책으로는 『대장 넷 졸병 일곱』 『청계천 5840』 『여우야 여우야 어디 있니?』 『살아있는 초상화』 등이 있습니다. 『안녕, 존』은 쓰고 그린 첫 그림책입니다.

/ 2015-10-01 10:15


링크 : http://www.morningreading.org/article/2015/10/01/20151001101500148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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